- 1언어영역은 감상 시험이 아니라 근거 찾기 시험입니다. 묻는 것은 내 생각이 아니라 지문이 무엇을 말했느냐이고, 답은 반드시 글 안에 있습니다.
- 2이과생이 언어를 못한다는 말은 순서가 뒤바뀐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물리 문제도 결국 문장이고, 조건 하나를 빠뜨려 틀리는 구조는 양쪽이 똑같습니다.
- 3그때 익힌 습관, 그러니까 문장을 조건과 결론으로 갈라 읽는 버릇 하나가 지금 제 직업의 전부입니다. 특허 청구항도 계약서도 결국 그 훈련의 연장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변리사 유연입니다.
오늘은 법 이야기를 잠깐 쉬고, 공부하는 분들께 드리는 이야기를 써 보려 합니다. 세 과목에 대해 쓸 생각인데 첫 번째가 언어영역입니다.
먼저 고백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언어영역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물리 문제는 풀면 답이 딱 떨어지는데, 언어는 답을 고르고 나서도 확신이 안 서는 게 싫었거든요. 4번 같은데 2번도 되는 것 같고, 해설을 보면 왜 4번인지는 알겠는데 다음 문제에서 또 같은 짓을 하고 있고요.
그런데 지금 제 직업이 무엇이냐면, 하루 종일 남이 쓴 문장을 읽고 그 문장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따지는 일입니다. 인생이 참 얄궂죠.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그때 제가 뭘 오해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오해를 풀고 나서 무엇이 달라졌는지에 대해서요.
첫 번째 — 그 시험은 제 생각을 묻고 있지 않았습니다
제가 오래 헤맨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시험이 무엇을 묻는지 잘못 알고 있었거든요.
저는 그게 글을 잘 읽는 사람을 가려내는 시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감수성이나 배경지식 같은, 타고나는 무언가를 재는 시험이라고요. 그래서 지문을 읽고 나면 "그래서 이 글이 좋다는 거야 나쁘다는 거야" 하는 인상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그 시험이 실제로 묻는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지문이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는가.이걸 알고 나니 문제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선택지 다섯 개 중에 그럴듯한 것을 고르는 게임이 아니라, 지문에 근거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갈라내는 작업이 된 겁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틀리는 이유가 대부분 하나로 모이기 때문입니다. 지문에 없는 말을 내가 채워 넣는 것. 글에서는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는데 선택지에서는 "영향을 준다"고 하고, 나는 그 차이를 못 느끼고 넘어갑니다. 글에서는 "대부분"이라고 했는데 선택지에는 "모두"라고 적혀 있고요.
그러니까 그 시험은 독해력 시험이라기보다, 얼마나 성실하게 확인하는 사람인가를 묻는 시험에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그건 재능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죠.
두 번째 — 이과생이 언어를 못한다는 말에 대하여
이 말을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순서가 뒤바뀐 이야기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리 문제를 떠올려 보시죠. "마찰을 무시할 때, 정지 상태에서 출발한 물체가" 이렇게 시작하는 문제 말입니다. 여기서 마찰을 무시한다는 조건을 놓치면 그 문제는 그냥 틀립니다. 정지 상태에서 출발한다는 말을 안 읽어도 틀리고요.
이게 언어영역에서 하는 일과 무엇이 다릅니까. 조건이 붙은 문장을 읽고, 그 조건이 무엇을 한정하는지 파악하고, 결론이 그 범위를 넘지 않는지 확인하는 일. 똑같습니다.제가 볼 때 이과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은 이 훈련이 이미 되어 있습니다. 다만 그 훈련을 수식이 있는 문장에서만 쓰고, 수식이 없는 문장에서는 안 쓸 뿐입니다. 물리 문제는 한 글자씩 짚어 읽으면서, 국어 지문은 대충 분위기로 읽는 거죠. 저도 그랬습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을 잘 읽는 사람이 수학을 어려워하는 경우, 수식이 낯설어서 그렇지 논리를 못 따라가서 그런 경우는 드뭅니다.
그래서 저는 문과 머리, 이과 머리라는 구분을 별로 믿지 않습니다. 같은 일을 어느 재료에서 해봤느냐의 차이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 — 그때 제가 붙잡았던 세 가지
거창한 방법론은 없습니다. 제가 실제로 했던 것 세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① 접속사에 표시하기
그러나, 그런데, 따라서, 즉. 이 단어들이 글의 뼈대입니다. 그러나가 나오면 앞뒤가 반대라는 뜻이고, 따라서가 나오면 앞의 것이 근거라는 뜻입니다.
지문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이 표시만 따라가면 글의 구조가 보입니다. 그리고 문제는 대개 그 구조 위에서 출제됩니다.
② 지시어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확인하기
이것, 그것, 이러한 현상, 앞서 말한 방식. 이 단어들이 나올 때마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는 겁니다.
처음에는 이게 시간 낭비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지시어를 잘못 잡고 뒤로 가면 그다음이 전부 어긋납니다. 저는 이걸 배선 잘못 꽂은 회로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군데 잘못 꽂으면 그 뒤로는 뭘 해도 안 돼요.③ 선택지를 지문과 대조하기
이게 제일 중요했습니다. 선택지를 읽고 "맞는 것 같다"로 판단하지 말고, 지문의 어느 줄이 그 근거인지 찾는 겁니다. 못 찾으면 그 선택지는 답이 아닙니다. 아무리 그럴듯해도요.
이 습관을 들이고 나서 제가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저는 지문을 못 읽어서 틀린 게 아니라, 지문을 안 보고 답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다 읽었으니 이제 내 머릿속 인상으로 판단해도 된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그 시험은 끝까지 지문으로 돌아오라고 만들어진 시험이었습니다.
네 번째 — 그 훈련이 지금 무슨 일이 되었느냐
여기서부터는 제 일 이야기입니다. 재미없으면 건너뛰셔도 됩니다. 다만 지금 하는 공부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궁금하신 분이 계실 것 같아 적어 둡니다.
저는 특허 명세서를 쓰고 분석하는 일을 해 왔습니다. 특허의 핵심은 청구항이라는 몇 줄의 문장인데, 이 문장이 곧 권리의 울타리입니다. 그리고 그 울타리의 크기는 단어 하나로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들입니다.
· 및과 또는 — 앞의 것은 둘 다 있어야 하고, 뒤의 것은 하나만 있어도 됩니다. 글자 하나 차이인데 권리 범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 이상과 초과 — 그 숫자를 포함하느냐 마느냐. 계약서에서도 똑같이 문제가 됩니다.
· 포함한다와 이루어진다 — 다른 것이 더 들어가도 되는지 아닌지가 갈립니다.
그러니까 제가 지금 하는 일은, 언어영역에서 하던 그 작업의 연장입니다. 문장이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았는지 가려내는 일이요. 다만 그때는 5점짜리 문제였고 지금은 회사의 사업이 걸려 있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계약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분쟁이 생겨서 계약서를 다시 읽어보면, 문제가 되는 지점은 대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조사 하나, 접속사 하나입니다. 계약할 때는 둘 다 같은 뜻으로 읽었는데 나중에 보니 두 가지로 읽히는 문장이었던 거죠.
그래서 저는 언어영역을 이렇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건 글을 사랑하는 사람을 뽑는 시험이 아니라, 문장을 오해 없이 다루는 사람을 길러내는 훈련이었다고요.
다섯 번째 — 이 과목은 느리게 옵니다
마지막으로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제가 실제로 겪은 것 하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언어영역은 성적이 늦게 오릅니다. 수학은 안 풀리던 유형이 어느 날 풀리기 시작하는 순간이 비교적 뚜렷한데, 언어는 그런 순간이 잘 안 옵니다. 열심히 했는데 점수가 그대로인 시기가 꽤 길게 이어지죠.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이 과목을 재능의 영역으로 결론 내리고 손을 놓습니다. 저도 잠깐 그랬고요.
그런데 늦게 오는 것과 안 오는 것은 다릅니다.이 과목이 느린 이유는, 읽는 습관 자체를 바꾸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습관은 하루아침에 안 바뀝니다. 지문을 인상으로 읽던 사람이 근거로 읽는 사람이 되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대신 한번 바뀌면 잘 안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 습관은 시험이 끝난 뒤에도 계속 쓰입니다.
지금 성적이 안 오르는 시기를 지나고 계신 분이 있다면, 그게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이 바뀌는 데 걸리는 시간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그랬습니다.
마치며 — 결국 문장을 읽는 일이 남았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저는 물리가 좋아서 물리를 했고, 전기공학을 배웠고, 특허를 다루다 법으로 왔습니다. 이과 공부를 하면서 언어영역은 어차피 지나가는 관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 하루를 보면, 제일 오래 하는 일이 남이 쓴 문장을 정확히 읽는 일입니다. 계약서, 판결문, 청구항, 상대방이 보낸 서면. 하루 종일 그것만 합니다.
그때 그 훈련이 없었다면 지금 이 일을 못 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 과목은 대학에 가기 위한 관문이 아니라, 제가 평생 쓰게 될 도구를 만드는 시간이었던 셈이죠. 물론 그때는 전혀 몰랐고, 알았어도 더 열심히 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금 그 시간을 지나고 계신 분들께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 시험은 여러분이 글을 사랑하는지 묻고 있지 않습니다. 문장이 실제로 무엇을 말했는지 확인할 줄 아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그건 배울 수 있는 것이고, 배우면 아주 오래 씁니다.
오늘도 지문 앞에 앉아 계신 분들, 응원합니다. 그 지루한 대조 작업이 나중에 무엇이 되는지 저는 조금 알고 있습니다.
"언어영역은 글을 사랑하는 사람을 뽑는 시험이 아니라, 문장을 오해 없이 다루는 사람을 길러내는 훈련이었습니다. 지금 제가 하루 종일 하는 일이 정확히 그 일이거든요."작성 :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 · 변리사 유연
※ 이 글은 제 경험에 기초한 개인적인 이야기이며, 특정한 학습법의 효과를 보장하는 글이 아닙니다. 시험의 명칭과 체제는 시기에 따라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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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광고 — 게시자 :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 · 변리사 유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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