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물리는 공식을 외우는 과목이 아니라 복잡한 세상에서 지금 중요한 것만 남기는 훈련이었습니다. 마찰을 무시하라는 문장이 그 훈련의 시작입니다.
- 2문제가 안 풀릴 때 저는 늘 같은 순서로 돌아갔습니다. 무엇이 주어졌나, 무엇이 보존되나, 어디가 경계인가. 이 셋이면 대부분 실마리가 나왔습니다.
- 3지금 제가 사건을 볼 때 하는 일이 정확히 같은 순서입니다. 그리고 물리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답이 아니라, 내 가정이 언제 깨지는지를 아는 태도였습니다.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변리사 유연입니다.
공부 이야기 마지막 편입니다. 오늘은 물리인데, 사실 이 글을 쓰려고 앞의 두 편을 썼습니다. 물리는 제가 제일 좋아했던 과목이거든요.
미리 말씀드리면 저는 물리올림피아드에서 동상을 받았습니다. 금과 은 다음이 동이라 자랑하기가 좀 애매한 자리인데요, 그래도 메달은 메달이니 오늘도 한 번 우려먹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제가 물리를 꽤 오래 붙잡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법을 합니다. 물리랑 아무 상관 없어 보이시죠.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하다 보니 제일 많이 쓰고 있는 게 그때 배운 것이더군요.
첫 번째 — 마찰을 무시하라는 그 문장
물리 문제는 이렇게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찰과 공기 저항은 무시한다." "물체를 질점으로 본다." "줄의 질량은 없다고 하자."
처음 이 문장들을 보면 좀 이상합니다. 현실에는 마찰이 있고 공기도 있는데, 없다고 치고 풀라니.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죠.
그런데 저는 이 문장들이 물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너무 복잡해서 통째로는 계산이 안 됩니다. 그래서 지금 알고 싶은 것에 영향을 크게 주는 것만 남기고 나머지를 잠시 치웁니다. 그게 저 문장들의 정체입니다.이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어디까지가 지금 문제에서 중요한지를 정하는 판단이죠. 그리고 이 판단이 좋으면 답이 현실과 잘 맞고, 나쁘면 안 맞습니다. 실제로 물리를 더 배우면 마찰을 다시 넣고, 공기 저항을 다시 넣습니다. 처음부터 다 넣지 않았을 뿐이지 영영 버린 게 아닙니다.
저는 이 태도를 배운 게 물리 공부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잡한 걸 앞에 두고 겁먹는 대신, 지금 중요한 게 뭔지부터 정하는 습관이요.
두 번째 — 공식을 외우는 과목이 아니었습니다
물리를 어려워하는 분들이 자주 하시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공식이 너무 많다는 것.
저는 이 지점에서 오해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물리에는 사실 공식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몇 개의 원리가 있고, 상황에 따라 그것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뿐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힘을 받으면 속도가 변한다는 것, 에너지는 형태를 바꾸며 총량이 유지된다는 것, 운동량도 그렇다는 것. 교과서에 나오는 수많은 식은 이 몇 가지가 상황마다 옷을 갈아입은 것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물리를 공식 목록으로 외우면 목록이 끝없이 길어지고, 원리로 이해하면 목록이 짧아집니다.제가 문제를 풀 때 실제로 했던 순서를 적어 보겠습니다. 거창한 게 아니라 정말 이 순서로 했습니다.
① 무엇이 주어졌나 — 문제에 나온 값과 조건을 그림 옆에 다 적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게 반입니다.
② 무엇이 변하지 않나 — 에너지가 보존되는 상황인가, 운동량이 보존되는 상황인가. 변하지 않는 것을 찾으면 그게 식이 됩니다.
③ 어디가 경계인가 — 물체가 바닥에 닿는 순간, 줄이 팽팽해지는 순간, 방향이 바뀌는 순간. 문제의 답은 대개 이 경계에 걸려 있습니다.
이 셋으로 안 풀리는 문제도 물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셋을 해 보면 최소한 뭘 모르는지는 알게 됐습니다. 그것만 해도 절반은 온 겁니다.
세 번째 — 단위가 저를 여러 번 구했습니다
작은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실전에서 제일 도움이 됐던 습관인데 의외로 안 알려주는 것 같아서요.
식을 세우고 나면 양변의 단위가 맞는지 확인하는 겁니다. 왼쪽이 미터인데 오른쪽이 초라면 그 식은 틀린 겁니다. 계산해 볼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이걸로 시험장에서 여러 번 살았습니다. 식을 잘못 세웠는데 숫자로만 보면 그럴듯해 보이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데 단위를 붙여 보면 바로 티가 납니다.그리고 이건 검산보다 빠릅니다. 검산은 같은 실수를 반복할 위험이 있는데, 단위 확인은 다른 각도에서 보는 거라 다른 종류의 실수를 잡아냅니다.
이런 습관이 왜 중요하냐면, 시험은 결국 내가 틀렸다는 걸 스스로 알아채는 능력을 재는 자리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답을 아는 것만큼이나, 내 답이 이상하다는 걸 느끼는 감각이 필요합니다.
지금 제 일에도 같은 감각이 쓰입니다. 서면을 쓰다가 어딘가 이상한데 어디가 이상한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대개 결론에서 거꾸로 내려옵니다. 이 결론이 맞으려면 앞에서 무엇이 참이어야 하나. 그러다 보면 스스로 슬쩍 넘어간 자리가 나옵니다. 단위를 맞춰 보는 일과 비슷합니다.
네 번째 — 물리가 법에서 하는 일
이제 그 이야기입니다. 물리를 배운 게 지금 무슨 쓸모가 있느냐.
먼저 직접적인 쓸모가 있습니다. 저는 특허를 다루는 일을 해 왔고, 특허는 기술을 모르면 손도 못 댑니다. 회로가 어떻게 동작하는지, 이 구조가 왜 그 효과를 내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기술을 문장으로 옮길 수가 없습니다. 이건 설명이 필요 없는 부분이죠.
그런데 더 자주 쓰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사고의 순서입니다.
법적 판단은 이렇게 이뤄집니다. 법이 정한 요건이 있고, 실제 사실이 있고, 그 사실이 요건에 들어맞는지를 봅니다. 그런데 실제 사건은 물리 문제처럼 정리되어 오지 않습니다. 사실관계가 엉켜 있고, 관련 없는 사정이 잔뜩 섞여 있고, 당사자마다 말이 다릅니다.
그때 제가 하는 일이 마찰을 무시하는 일입니다. 지금 이 쟁점에서 결론을 바꿀 수 있는 사실이 무엇인지 정하고, 나머지를 잠시 옆으로 치우는 것. 이걸 안 하면 사건이 통째로 복잡한 채로 남아서 아무 판단도 못 합니다.물론 치워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게 두 번째로 배운 것입니다.
물리에서 마찰을 무시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상황에서 마찰이 작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바뀌면 무시하면 안 됩니다. 빗면을 미끄러지는 물체에서는 무시해도 되지만, 브레이크를 다룰 때 마찰을 무시하면 그건 완전히 틀린 답이 됩니다.법도 같습니다. 지금은 중요하지 않다고 옆으로 치운 사실이, 사건의 국면이 바뀌면 갑자기 핵심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치워둔 것들을 따로 적어 둡니다. 이건 지금 안 쓰지만 이런 조건이 바뀌면 다시 봐야 한다고요.
그러니까 물리가 가르친 것은 답이 아니라 태도였습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가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을 것, 그리고 그 가정이 언제 깨지는지 알고 있을 것.
다섯 번째 — 물리를 좋아했던 사람에게
마지막은 응원으로 쓰겠습니다.
물리를 좋아하는데 진로가 걱정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이걸 해서 뭐가 되나 싶고, 주변에서는 다른 걸 하라고 하고요. 저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답은 제 경우뿐이라 조심스럽지만, 이렇게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물리에서 논리를 배웠고, 전기공학에서 시스템을 배웠고, 그 위에 특허를 얹었고, 다시 법을 얹었습니다. 지금은 금융의 언어까지 배우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단계에서 제가 쓰고 있는 도구는 하나입니다. 복잡한 것을 구조로 보고, 중요한 것만 남기고, 그 판단이 언제 틀리는지 아는 것.
물리는 특정한 직업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어디로 가든 들고 갈 수 있는 연장이었습니다.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물리를 공부하면서 느끼는 그 감각, 그러니까 세상이 몇 개의 규칙으로 설명된다는 그 이상한 감동 말입니다. 저는 그게 공부를 계속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적표에는 안 적히지만요.
떨어지는 사과와 도는 달이 같은 법칙이라는 걸 처음 알았을 때의 기분을 기억하신다면, 그 기분은 계속 쓸모가 있습니다. 지금은 그게 어디에 쓰일지 안 보이는 게 당연합니다. 저도 그때는 몰랐습니다.
마치며 — 무시해도 되는 것과 무시하면 안 되는 것
세 편에 걸쳐 공부 이야기를 썼습니다. 정리하면서 보니 세 과목이 서로 다른 걸 가르쳤더군요.
언어영역은 문장이 무엇을 말했고 무엇을 말하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수리영역은 결론이 아니라 거기까지 가는 길을 적는 법을 가르쳤고요. 그리고 물리는 무엇을 잠시 무시해도 되는지를 판단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지금 제 일을 뜯어보면 이 셋이 전부입니다. 계약서의 문장을 정확히 읽고, 결론까지의 단계를 빠짐없이 적고, 이 사건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정하는 일. 다른 걸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때는 이게 다 대학 가려고 하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대학은 그 훈련의 결과로 따라온 것이었고, 훈련 자체가 남았습니다.
그러니 지금 책상 앞에 앉아 계신 분들께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하고 계신 그 지루한 일들, 그림 그리고 조건 적고 단위 맞춰 보는 그 일들이 나중에 무엇이 되는지 저는 조금 알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멀리까지 갑니다.
마찰을 무시하라는 문장 앞에서 잠시 웃어 주십시오. 그 문장이 제일 어른스러운 문장이더라고요.
"마찰을 무시하라는 문장이 물리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를 잠시 치우는 판단이니까요. 다만 치운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 상황이 바뀌면 그게 핵심이 되거든요."작성 :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 · 변리사 유연
※ 이 글은 제 경험에 기초한 개인적인 이야기이며, 특정한 학습법의 효과를 보장하는 글이 아닙니다. 시험의 명칭과 체제는 시기에 따라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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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광고 — 게시자 :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 · 변리사 유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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