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의 기업법 노트

좋은 기업도 주가조작의 희생양이 된다

— 라덕연 사태로 읽는 자본시장 신뢰, 소액주주, 그리고 기업이 지켜야 할 것

3줄 요약
  1. 1라덕연 사태의 본질은 '나쁜 기업이 오른 사건'이 아니라, '좋은 기업도 시세조종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2. 2회사는 아무 잘못이 없어도 시가총액이 증발하고, 그 최대 피해자는 회사가 아니라 '기존 소액주주'입니다.
  3. 3그래서 실적만으로는 회사를 지킬 수 없습니다. 지배구조·내부통제·공시·준법경영이 함께 있어야 기업가치가 보호됩니다.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 변리사 유연입니다.

상상 하나 해보겠습니다. 어느 날 아침, 알람 소리에 눈을 뜹니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우리 회사인데, 밤새 시가총액의 절반이 증발해 있습니다. 사고를 친 사람은 따로 있고, 정작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한 적이 없습니다. 커피 한 모금 넘기기도 전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2023년 4월, 이건 상상이 아니라 실제였습니다. 흑자를 내고, 배당을 주고, 재무구조도 멀쩡한 상장회사들의 주가가 며칠 연속 무너졌습니다. 라덕연 씨 등이 벌인 시세조종 혐의로 불거진, 이른바 'SG증권발 주가폭락 사태'입니다.

많은 분이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저 회사, 원래 부실했던 거 아니야?" 사실 저도 처음 뉴스를 봤을 때 그런 반응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주가가 그렇게 빠졌으니 뭔가 구린 데가 있겠거니 하는 거죠. 그런데 기업 사건을 다루는 변호사의 눈으로 하나하나 뜯어보면, 이 사건의 진짜 무서움은 정반대 지점에 숨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들어가며 — '주가조작 사건'이 아니라 '신뢰를 무너뜨린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단순한 주가조작 뉴스로만 보면 본질을 놓칩니다. 마치 화재 뉴스를 보면서 "불이 크게 났네" 하고 채널을 돌리는 것과 같습니다. 정작 중요한 건 '왜 불이 옆집으로 옮겨붙었는가'인데 말이죠.

기업 사건을 다루는 변호사의 시각에서 라덕연 사태의 본질은 이것입니다.

"기업의 잘잘못과 무관하게, 시세조종이 기업과 주주에게 어떤 법률적·경제적 피해를 입히는가."

즉 이 사건은 '기업지배구조와 자본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린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 불길에, 아무 잘못 없는 우량기업과 그 주주들이 함께 휩쓸렸습니다.

기업 가치와 주가조작은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좋은 회사라고 안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꾸준히 우상향하던 우량주였기에 — 말하자면 '평판 좋고 조용한 모범생'이었기에 — 조작의 '재료'로 이용당하기 좋았습니다. 얌전한 학생일수록 누명 씌우기 쉬운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PART 1. 멀쩡한 회사가 어떻게 무너졌나 — 숫자로 읽는 붕괴의 구조

법률 지식만으로는 이 사건이 잘 안 보입니다. 자본시장을 숫자로 읽는 법을 함께 배우다 보니 이해하게 된 구조가 있는데, 그것을 먼저 풀어드리겠습니다. 겁먹지 마세요. 용어만 어렵지, 알고 보면 다 동네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이번 사태의 도구는 CFD(차액결제거래)였습니다. 이름은 거창한데, 쉽게 말하면 '외상으로 크게 지르는 빚투'입니다. 100만 원짜리 물건을 사는데 10만 원만 보증금으로 걸고, 나머지는 나중에 정산하기로 하고 일단 크게 잡는 거죠. 실제 주식을 다 사지 않고, 증거금(일부 담보)만 맡기고 큰 포지션을 잡는 '레버리지' 거래입니다. 적은 돈으로 몇 배의 물량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잘될 때는 짜릿하지만, 이게 나중에 부메랑이 됩니다.

여기에 '통정매매'가 더해졌습니다. 이건 한마디로 '짜고 치는 고스톱'입니다. 판돈이 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한 패거리가 서로 패를 돌려주며 "이 판 지금 아주 뜨겁다"는 분위기만 연출하는 거죠. 여러 계좌가 서로 짜고 사고팔며, 거래가 활발한 것처럼 꾸며 주가를 아주 천천히, 오랜 기간에 걸쳐 끌어올린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폭등시켰다면 누구든 "어? 이상한데?" 했을 텐데, 완만한 우상향이라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개구리를 미지근한 물에 넣고 서서히 끓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외상에는 반드시 갚는 날이 옵니다. 주가가 일정 선 아래로 떨어지면, 증거금이 모자라 강제로 청산되는 '반대매매(마진콜)'가 발동합니다. "보증금이 다 녹았으니 물건 도로 내놓으세요" 하고 시스템이 자동으로 팔아버리는 겁니다. 문제는 이게 도미노라는 데 있습니다. 하나가 넘어지면 그 매도가 주가를 더 떨어뜨리고, 떨어진 주가가 옆 사람의 반대매매를 부르고, 또 떨어지고… 첫 조각을 톡 건드리는 순간 끝까지 우르르 넘어갑니다. 2023년 4월, 그 도미노가 한꺼번에 쓰러졌습니다. 그래서 며칠 만에 시가총액 수조 원이 증발한 것입니다.

▶ 핵심은 이겁니다. 이 붕괴는 회사의 실적과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기업가치는 그대로인데, '주가'라는 숫자만 인위적으로 부풀려졌다가 꺼진 것입니다. 회사는 무대를 빌려줬을 뿐, 연극의 배우가 아니었습니다. 극장 건물이 무슨 죄겠습니까. 사고는 무대 위에서 났는데 말이죠.

PART 2. 회사는 죄가 없어도, 대가는 치른다

기업 사건을 다루는 변호사로서 제가 가장 우려하는 지점이 여기입니다. 회사가 아무 잘못을 하지 않아도, 이름이 사건에 오르는 순간 실제 피해가 발생합니다. 억울하게 단체 사진에 얼굴이 찍혔는데, 그 사진이 하필 수배 전단인 격입니다.

· 거래처가 불안해합니다 — "저 회사 괜찮은 거야?"

· 은행의 신용 평가가 흔들립니다.

· 투자자 소송의 대상이 됩니다.

· CB(전환사채)·BW(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등 자금조달이 막힙니다.

· 예정됐던 신규 투자·제휴가 중단됩니다.

멀쩡히 사업하던 회사가, 남이 벌인 조작 때문에 자금줄이 끊기고 신용이 깎이는 것입니다. 자본시장에서 '주가'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회사의 신용·조달능력과 연결된 생명선이기 때문입니다. 몸은 멀쩡한데 신용점수가 깎여서 대출이 막히는 것과 같습니다. 아프지도 않은데 보험료만 오른 셈이죠.

PART 3. 가장 큰 피해자는 회사가 아니라 '기존 소액주주'입니다

법률적으로 냉정하게 따지면, 이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회사가 아닙니다. 바로 '기존 소액주주'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회사의 자산도, 사업도, 실적도 그대로인데 — '주가만' 폭락하기 때문입니다. 조작 세력이 고점에서 유유히 빠져나간 뒤, 그 물량과 손실을 뒤늦게 들어온 개인투자자와 원래부터 그 주식을 들고 있던 주주들이 고스란히 떠안습니다. 파티가 끝나고 불이 켜졌을 때, 계산서를 들고 남겨진 사람이 정작 술은 한 잔도 안 마신 손님인 셈입니다.

회사는 시간이 지나면 실적으로 주가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체력이 튼튼하면 감기는 낫습니다. 하지만 하한가 연속에 반대매매로 강제청산당한 개인은, 그 손실을 회복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미 시스템이 바닥에서 주식을 다 팔아버린 뒤라, 나중에 주가가 회복돼도 그 개인의 계좌엔 주식이 남아 있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이 사건은 '기업 범죄'인 동시에 '다수 소액주주에 대한 가해'입니다.

PART 4. 자본시장법의 언어 — 그리고 형사보다 무서운 민사

자, 여기서부터는 정색하고 법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앞의 행위들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이 정면으로 금지하는 것들입니다.

· 시세조종(§176) — 통정매매·가장매매로 시세를 인위적으로 형성하는 행위입니다. 통정매매가 '둘이 짜고 주고받는 것'이라면, 가장매매는 아예 '내 왼손과 오른손이 주고받는 것' — 실제로는 주인이 바뀌지 않는데 거래가 일어난 척하는 것입니다. 둘 다 "이 종목 지금 활발하다"는 착시를 만듭니다.

· 미공개중요정보 이용(§174) — 내부정보로 남보다 먼저 사고파는 행위입니다. 시험 문제를 미리 본 사람이 시험장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애초에 게임이 공정하지 않습니다.

· 부정거래(§178) — 부정한 수단·계획으로 시장을 속이는 포괄적 금지 조항입니다. 앞의 그물에 안 걸린 새로운 수법도 걸러내는 '큰 그물'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기업 사건을 다루는 변호사 입장에서 정말 무서운 것은 형사재판이 아닙니다. 그 뒤에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민사'입니다.

시세조종으로 손해를 입은 투자자는 자본시장법(§177)에 따라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이것이 증권관련 집단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집단소송을 쉽게 말하면 '피해자들이 한 줄로 서서 함께 청구하는 것'입니다. 한 명 한 명은 소액이라 소송을 포기할 법도 한데, 수백·수천 명이 뭉치면 회사로선 결코 가볍지 않은 규모가 됩니다. 여기에 회사가 공시·내부통제를 소홀히 한 정황이 드러나면, 경영진의 책임 문제까지 번집니다. 형사는 가해자를 처벌하고 끝나지만, 민사 집단소송은 회사와 경영진을 몇 년간 붙잡고 놓지 않습니다. 형사가 '한 번의 수술'이라면, 민사 집단소송은 '몇 년짜리 재활치료'인 셈입니다.

그래서 회사가 이 사건에 연루됐다면, 변호사는 즉시 이렇게 움직입니다.

① 공시 검토 — 미공개정보 이용 정황이 있었는지

② 내부자 거래 조사 — 임직원의 매매 내역

③ 대주주 거래 확인 — 블록딜 등 대량거래 여부

④ 금융당국 협조 — 자료 제출과 소명

핵심은 '회사가 이 조작에 가담·이용당하지 않았음'을 스스로 신속히 규명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흔한 실수가 '가만히 있으면 지나가겠지' 하는 태도입니다. 침묵은 결백의 증거가 아니라 의심의 거름입니다. 오해받을 때 아무 말도 안 하면, 사람들은 알아서 최악의 상상을 채워 넣으니까요.

회사의 가장 큰 리스크는 '평판'입니다

한 가지 더. 주가조작 사건에 이름이 한 번 오르면, 검색창에 회사 이름을 치는 순간 '주가조작'이 연관검색어로 나란히 따라붙습니다. 소개팅 나가기도 전에 상대가 내 이름을 검색해 보는 시대인데, 회사라고 다를까요.

이 흔적은 채용, 투자유치, M&A, 해외진출 — 회사의 모든 미래에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무죄가 밝혀진 뒤에도, 검색창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인터넷은 용서는 해도 삭제는 안 해주는 상대거든요. 그래서 평판 관리와 정확한 사실 공표는 법적 대응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실무 체크리스트 — 상장기업이 지금 점검할 다섯 가지

(이 다섯 줄은 캡처해 두셨다가, 다음 임원 회의 때 슬쩍 꺼내셔도 좋습니다.)

1. 우리 회사 주식의 거래에 비정상적 패턴(장기 완만한 상승, 특정 계좌 반복)이 없는지 모니터링하고 있는가.

2. 임직원·대주주의 자기회사 주식 거래에 대한 내부 통제·신고 절차가 있는가.

3. 미공개중요정보의 생성·관리·공시 절차가 정비돼 있는가.

4. 위기 발생 시 즉시 가동할 공시·IR·법률 대응 매뉴얼이 준비돼 있는가.

5. 소액주주와의 소통(IR) 채널이 평소에 작동하고 있는가 — 신뢰는 위기 전에 쌓입니다.

마치며 — 실적만으로는 회사를 지킬 수 없습니다

라덕연 사태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은 조금 역설적입니다. 좋은 회사가 되는 것만으로는, 회사를 지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공부 잘한다고 학교폭력을 안 당하는 게 아닌 것처럼요.

자본시장에서 기업가치는 실적이라는 '내용'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지배구조(Governance), 내부통제, 공시, IR, 준법경영이라는 '형식'이 함께 갖춰질 때 비로소 보호됩니다. 좋은 실적은 회사를 성장시키지만, 좋은 시스템은 회사를 지킵니다. 엔진이 아무리 좋아도, 브레이크와 안전벨트가 없으면 그 차는 결국 위험하니까요.

기업 사건을 다루는 변호사가 자본시장법과 컴플라이언스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것은 회사를 옥죄는 규제가 아니라, 남이 벌인 조작으로부터 우리 회사와 주주를 지키는 방패이기 때문입니다.

"라덕연 사태는 '나쁜 기업이 오른 사건'이 아니라, '좋은 기업도 주가조작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한국 자본시장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회사를 지키는 것은 실적이 아니라 시스템입니다."

작성 :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 · 변리사 유연

※ 본 글은 공개된 사실과 일반적 법리에 기초한 정보·교육 목적의 칼럼이며, 특정 기업·특정인의 위법이나 연루를 단정하지 않고 개별 사건의 법률자문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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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광고 — 게시자 :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 · 변리사 유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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