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의 노트

"싱가포르에 하나 세우면 상속세 없어지는 거죠?" — 패밀리 오피스에 대한 가장 비싼 오해

국경을 넘는 건 자산이지, 납세의무가 아닙니다. 짐은 부쳤는데 여권은 여전히 내 손에 있거든요

3줄 요약
  1. 1싱가포르는 상속세·증여세·자본이득세가 없고, 요건을 갖춘 펀드에는 특정소득 면세(13O·13U) 제도까지 있어 아시아 패밀리 오피스의 허브가 됐습니다.
  2. 2그런데 우리 세법은 '자산이 어디 있느냐'가 아니라 '사람이 어디 사느냐'를 봅니다 — 피상속인이 한국 거주자면 싱가포르에 있는 재산도 그대로 상속세 대상입니다.
  3. 3오히려 역설이 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면세를 많이 받을수록, 우리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의 특정외국법인 배당간주(CFC)에 걸릴 확률이 올라갑니다.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변리사 유연입니다.

요즘 상담에서 유독 자주 듣는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변호사님, 싱가포르에 패밀리 오피스 하나 세우면 되는 거죠?" 그 '하나 세우면'이라는 표현에 늘 웃게 됩니다. 헬스장 등록증만 끊으면 근육이 생긴다고 믿는 것과 비슷한 어감이거든요. 등록은 하루면 되지만, 몸이 바뀌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죠.

앞선 세 편에서 비트코인 상속, 상속세, 증여세를 차례로 다뤘습니다. 그 이야기들이 전부 '국내'라는 운동장 안에서였다면, 오늘은 공을 국경 밖으로 한 번 차 보겠습니다. 자산가들이 가장 많이 묻고, 가장 많이 오해하는 그 구조 — 싱가포르 패밀리 오피스입니다.

※ 본 글은 국제 자산승계 구조와 관련 법률·세무를 이해하기 위한 일반적 정보·교육 목적의 칼럼(2026년 8월 기준)이며, 특정 국가로의 이주나 특정 구조의 설립을 권유하거나 개별 법률·세무 자문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국내외 세제와 현지 규제는 계속 개정되므로, 실행 전 반드시 최신 기준과 국내 세무·법률 전문가 및 현지 자문사의 검토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PART 1. 패밀리 오피스란 무엇인가 — '가문 전용 집사 회사'

먼저 용어부터 풀겠습니다. 패밀리 오피스(Family Office)는 한 가문의 자산만을 전담해 관리하는 회사입니다. 크게 둘로 나뉘어요.

· 단일 가족 오피스(SFO) — 한 가문의 돈만 굴립니다. 남의 돈을 받지 않죠.

· 복수 가족 오피스(MFO) — 여러 가문의 자산을 함께 관리합니다.

쉽게 비유하면 '가문 전용 집사 회사'입니다. 옛날 대저택의 집사가 살림·회계·손님·자녀 교육까지 챙겼듯, 패밀리 오피스는 투자만 하는 곳이 아니라 세무·법무·승계·자선·심지어 후계자 교육까지 한 지붕 아래에 둡니다. 자산운용사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여기예요. 자산운용사는 '수익률'을 위해 존재하지만, 패밀리 오피스는 '가문의 연속성'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리고 왜 하필 싱가포르냐. 이유는 세금 하나가 아닙니다. 정치가 안정돼 있고, 영미법 계열의 법치가 예측 가능하며, 영어가 통하고, 아시아 시간대 한복판에 있죠. 자산가에게 이건 전부 '밤에 잠이 오느냐'의 문제입니다. 그 위에 세제가 얹혔을 뿐이에요.

PART 2. ★ 싱가포르의 매력 — '세 가지 없음'과 '하나의 있음'

그럼 그 얹힌 세제를 보겠습니다. 싱가포르가 자산가에게 매력적인 이유는 '없는 것 셋'과 '있는 것 하나'로 요약됩니다.

없는 것 셋.

· 상속세 — 원래 있었지만 2008년에 폐지됐습니다.

· 증여세 — 없습니다.

· 자본이득세 — 주식을 팔아 남긴 차익에 원칙적으로 과세하지 않습니다. (다만 매매가 사업활동으로 평가되면 소득세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여기에 배당도 이른바 '단일 과세(one-tier)' 체계라, 법인 단계에서 세금을 낸 뒤 주주에게 나눠주는 배당에는 다시 과세하지 않습니다. 자산을 쌓고 물려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당히 매력적인 지형이죠.

있는 것 하나. 싱가포르 통화청(MAS)이 운영하는 펀드 면세 제도입니다. 「소득세법(Income Tax Act)」의 조문 번호를 따 흔히 13O·13U로 불리는데, 승인을 받으면 그 펀드가 '지정 투자'에서 얻는 '특정 소득'에 사실상 면세가 적용됩니다.

그런데 여기가 중요합니다. 이 면세는 선물이 아니라 계약에 가깝습니다. 싱가포르가 요구하는 건 대략 이런 것들이에요.

· 일정 규모 이상의 운용자산을 유지할 것

· 싱가포르 세법상 거주자인 투자전문가를 일정 인원 이상 상시 고용할 것 — 그중 최소 한 명은 가족 구성원이 아닐 것

· 매년 일정액 이상을 싱가포르 현지에 지출할 것 (운용자산 규모에 따라 구간이 올라갑니다)

· 자산의 일정 부분을 싱가포르 현지 투자에 배분할 것

구체적인 금액 문턱과 인원 요건은 최근 몇 년 사이에도 여러 차례 손질됐고, 앞으로도 바뀔 수 있어 여기 숫자로 못 박지 않겠습니다(실행 전 반드시 최신 MAS 기준을 확인하셔야 합니다). 다만 원리는 분명합니다 — 싱가포르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세금을 깎아주겠다. 대신 우리 나라에 진짜 사무실과 진짜 사람과 진짜 지출을 남겨라."

즉 이 제도의 본질은 '세금 안 내는 우편함'을 허용하는 게 아니라, 실체 있는 자산관리 산업을 유치하는 것입니다. 껍데기만 만들어서는 애초에 승인이 나지 않습니다.

PART 3. ★ 가장 비싼 오해 — 우리 세법은 '자산'이 아니라 '사람'을 봅니다

이제 오늘의 핵심입니다. 앞의 이야기만 들으면 "그럼 싱가포르로 옮기면 상속세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 싶으시죠. 여기서 아주 중요한 갈림길이 나옵니다.

우리 상속세제는 재산이 어느 나라에 있는지를 먼저 보지 않습니다. 돌아가신 분이 한국 거주자인지를 먼저 봅니다. 피상속인이 거주자면 국내 재산이든 국외 재산이든 전 세계 재산이 우리 상속세의 과세 대상이에요. 비거주자라면 국내에 있는 재산만 과세됩니다.

그러니 싱가포르에 법인을 세우고 자산을 옮겨두었다 해도, 그 자산의 주인이 여전히 한국 거주자라면 상속세 계산에서 빠지지 않습니다. 이게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예요. 많은 분이 '자산의 국적'을 바꾸면 된다고 생각하시는데, 실제로 문제가 되는 건 '사람의 거주지'입니다.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이삿짐은 배로 부쳤는데, 여권은 여전히 내 주머니에 있는 상황. 짐이 국경을 넘었다고 해서 내가 국경을 넘은 게 아니고, 세금은 짐이 아니라 사람을 따라다닙니다.

그리고 거주자 판정은 "비행기표를 끊었다"로 끝나지 않습니다. 국내에 생계를 같이하는 가족이 있는지, 자산이 어디에 있는지, 실제 생활의 근거가 어디인지를 종합해서 봅니다. 서류상 주소만 옮기고 실제 생활은 서울에서 하는 경우, 그건 거주지 이전이 아니라 그냥 주소 이전이에요. 여기서 무너지는 설계가 정말 많습니다.

PART 4. ★ 국경 앞의 세 관문 — 톨게이트, 역설, 그리고 신고

그럼 정말로 거주지를 옮기려 한다면, 세 개의 관문을 지나야 합니다.

① 나가는 문의 톨게이트 — 국외전출세

「소득세법」 제118조의9는 이른바 국외전출세를 두고 있습니다. 일정 요건을 갖춘 거주자가 국외로 이주해 비거주자가 되면, 출국일에 보유 주식 등을 양도한 것으로 보아 양도소득세를 매기는 제도예요. 요건은 두 가지 축입니다 — 출국일 10년 전부터 출국일까지 국내에 주소·거소를 둔 기간의 합이 5년 이상일 것, 그리고 대통령령이 정하는 대주주에 해당할 것.

쉽게 말해 '나가는 문에 톨게이트가 하나 서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팔지 않았는데도 판 것으로 보고 정산을 요구하는 거죠. 세금이 무서워 떠나려는 분들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이 대개 이겁니다. 떠나는 순간이 곧 과세의 순간이니까요.

② 그리고 역설 — CFC(특정외국법인 배당간주)

여기가 오늘 가장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제27조는, 세부담이 지나치게 낮은 나라에 세운 외국법인이 이익을 배당하지 않고 쌓아두면 그 유보소득을 주주가 배당받은 것으로 보아 과세합니다. 판단 기준이 조문에 이렇게 적혀 있어요 — 그 법인의 실제부담세액이 실제발생소득에 「법인세법」 제55조의 최고세율의 70퍼센트를 곱한 금액 이하일 것.

이 문장을 싱가포르 패밀리 오피스에 대보면 아이러니가 드러납니다. 싱가포르의 표준 법인세율은 이 기준선과 아슬아슬한 수준입니다. 그런데 13O·13U 승인을 받아 특정소득에 면세를 적용받는 순간, 실제 세부담은 그 선 아래로 쑥 내려가죠.

즉 싱가포르에서 면세를 잘 받을수록, 한국의 배당간주 과세에 걸릴 가능성은 오히려 커집니다. 절세하러 간 구조가 절세 때문에 붙잡히는 셈이에요. 같은 법 제28조에 실질적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경우 적용을 배제하는 규정이 있지만, 소득 대부분이 이자·배당·양도차익 같은 수동적 소득인 자산관리 구조는 이 배제를 받기가 간단하지 않습니다.

③ 마지막은 늘 신고

해외금융계좌 신고, 외국환거래 신고, 국외 자산·소득의 신고. 화려한 구조를 짜놓고 정작 여기서 무너지는 경우가 실무에서 가장 흔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 「국세기본법」 제14조의 실질과세 원칙이 있어요. 형식이 어떻게 생겼든, 실질적으로 소득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를 보고 과세한다는 원칙입니다.

제가 2편(상속세)에서 "숨기면 탈세, 드러내 설계하면 절세"라고 했죠. 국경을 넘으면 이 명제가 더 날카로워집니다. 국경 밖은 안 보일 것 같지만, 정보교환 협정으로 계좌 정보가 오가는 시대예요. 안 보이는 게 아니라, 늦게 보이는 것뿐입니다.

PART 5. ★ 그럼 왜들 세우는가 — 답은 '절세'가 아니라 '거버넌스'

여기까지 읽으시면 "그럼 아무 소용 없는 것 아니냐"고 하실 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효용이 있는 자리가 사람들이 기대하는 자리와 다를 뿐이에요.

패밀리 오피스가 진짜로 값어치를 하는 지점은 이런 것들입니다.

· 가족 자산의 통합 지배구조 — 흩어진 자산을 하나의 창구에서 보고, 의사결정 규칙(가족헌장·투자위원회)을 문서로 세웁니다. 이게 없으면 2세대에서 반드시 다툽니다.

· 국경을 넘는 가족의 현실 — 자녀가 싱가포르·미국·한국에 나뉘어 사는 가문에게는, 어느 한 나라의 제도만으로 승계를 설계할 수가 없습니다.

· 신탁과의 결합 — 미성년 상속인, 조건부 분배, 특정 자산의 장기 보전. 3편에서 다룬 신탁 구조가 여기서 본격적으로 쓰입니다.

· 자선 — 싱가포르는 패밀리 오피스를 통한 기부에 별도 세제 지원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 통화·정치 분산 — 자산 전부가 한 나라 통화와 한 나라 제도에 묶여 있지 않게 하는 것. 자산가에게 이건 수익률이 아니라 보험입니다.

정리하면, 패밀리 오피스는 세금을 피해 도망가는 뒷문이 아니라 가문 자산에 지배구조를 세우는 일입니다. 3편에서 상속세 설계를 '시간의 예술'이라 했고, 4편에서 증여를 '시점 선택권'이라 했죠. 패밀리 오피스는 그 위에 '공간'이라는 축을 하나 더 얹는 것뿐이에요. 시간과 공간을 함께 설계하는 것.

반대로 가장 위험한 접근은 이겁니다. 실체 없는 회사를 하나 만들고 명의만 옮긴 뒤 "이제 한국 세법과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 실체가 없으면 싱가포르에서는 승인이 안 나고, 한국에서는 실질과세로 무너집니다. 양쪽에서 동시에 부정당하는 가장 비싼 실패죠.

실무 체크리스트 — 해외 패밀리 오피스를 검토한다면 (저장해 두세요)

1. 회사보다 '사람'이 먼저다 — 거주자 판정부터 확인하라. 피상속인이 한국 거주자면 국외 재산도 전부 상속세 대상이다. 구조 설계는 그다음이다.

2. 나가는 문의 톨게이트를 확인하라 — 국외전출세(「소득세법」 제118조의9) 대상인지 출국 전에 계산한다. 떠나는 순간이 과세의 순간이다.

3. 면세의 역설을 계산하라 — 현지에서 면세를 크게 받을수록 우리 CFC(「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제27조) 배당간주 위험이 커진다. 양국을 함께 계산하지 않으면 절세가 이중과세로 뒤집힌다.

4. 실체를 갖춰라 — 사무실·상시 인력·현지 지출·현지 투자. 껍데기 구조는 싱가포르에서 승인이 안 되고 한국에서 실질과세로 무너진다.

5. 신고 의무를 빠뜨리지 마라 — 해외금융계좌·외국환거래 신고. 잘 짠 설계가 가장 자주 무너지는 지점이 화려한 구조가 아니라 밋밋한 신고서다.

마치며 — 국경을 넘는 건 자산이지, 납세의무가 아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싱가포르 패밀리 오피스는 분명 정교하고 매력적인 제도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한국 세법을 지우는 지우개는 아니에요. 자산은 국경을 넘어도, 납세의무는 사람을 따라 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어디 사는가는 서류가 아니라 생활이 결정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상담을 받으면 구조 이야기부터 하지 않습니다. "가족이 실제로 어디서 살고 계십니까"부터 여쭙습니다. 그 답이 정해지지 않은 채로 그린 설계도는, 아무리 정교해도 종이 위에서만 아름답거든요.

덧붙이자면 이 영역은 어느 한 사람이 혼자 마무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국내 세무는 세무 전문가가, 현지 요건과 승인은 싱가포르 현지 자문사가, 그리고 가족 간 권리관계·신탁·분쟁 예방 구조는 저 같은 사람이 맡습니다. 제가 이 판에서 보는 자리는 세율표가 아니라, 그 구조 안에서 누구의 권리가 어떻게 지켜지고 다툼이 어디서 터지는가입니다. 세 사람이 같은 설계도를 보고 있어야 비로소 그 구조가 현실에서 섭니다.

화려한 건 구조도지만, 자산가의 밤잠을 지켜주는 건 언제나 '이게 실제로 유효한가'라는 답입니다.

"이삿짐은 배로 부쳤는데 여권은 아직 내 주머니에 있습니다. 자산이 국경을 넘어도 납세의무는 사람을 따라 남거든요. 그리고 역설이 하나 있죠 — 싱가포르에서 면세를 잘 받을수록, 한국의 배당간주에는 더 잘 걸립니다."

작성 :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 · 변리사 유연

※ 본 글은 국제 자산승계 구조와 관련 법률·세무를 이해하기 위한 일반적 정보·교육 목적의 칼럼(2026년 8월 기준)이며, 특정 국가로의 이주·특정 구조의 설립을 권유하거나 개별 법률·세무 자문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싱가포르의 펀드 면세 제도(13O·13U) 요건과 우리 국외전출세·특정외국법인 과세·거주자 판정 기준은 계속 개정되며, 개별 사안은 사실관계와 관련 조세조약에 따라 결론이 달라집니다. 실행 전 반드시 최신 기준과 국내 세무·법률 전문가 및 현지 자문사의 검토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자산승계 시리즈 : 「고액자산가가 비트코인 앞에서 던지는 첫 질문」 · 「비트코인 상속 설계의 기술」 · 「상속세, 합법적으로 줄이는 설계의 기술」 · 「증여세 — 쪼개고, 일찍, 오르기 전에」 · 「싱가포르 패밀리 오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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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지 본 사이트의 게시물은 관련 법령과 실무를 이해하기 위한 일반적 정보·교육 목적의 자료이며,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자문이 아닙니다. 법령·판례와 그 해석은 변경될 수 있고 구체적 결론은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집니다. 진행 중인 사안의 결과를 확정적으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변호사 광고 — 게시자 :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 · 변리사 유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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