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의 기업법 노트

맡긴 돈과 빌린 돈 — FTX는 새로운 실패가 아니라 아주 오래된 실패였습니다

앞 편의 원코인이 '없는 것을 판' 사건이라면, FTX는 '있는 것을 맡아놓고 딴 데 쓴' 사건입니다. 정반대인데 둘 다 무너졌죠

3줄 요약
  1. 1FTX는 기술이 없어서 무너진 게 아닙니다. 거래소는 실제로 작동했어요. 무너뜨린 건 고객이 맡긴 자산이 계열 트레이딩 회사로 흘러간 구조, 즉 거버넌스였습니다.
  2. 2그래서 법적 성격도 다릅니다. 앞 편의 원코인이 사기의 얼굴이라면, FTX는 우리 법으로 옮기면 횡령·배임의 얼굴에 가깝습니다.
  3. 3이건 크립토가 만든 새 문제가 아닙니다. 금융이 아주 오래전에 배운 원칙을 다시 어긴 것이죠 — 맡은 돈과 빌린 돈은 다르다.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변리사 유연입니다.

세탁소에 맡긴 정장을 주인이 몰래 입고 나갔다고 해봅시다. 저녁에 깨끗이 걸어두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도 모릅니다. 옷은 그대로 있고 손님은 다음 날 멀쩡한 옷을 받아 가니까요. 문제가 되는 건 딱 하나, 그가 그 옷을 입고 나간 날 비가 오는 경우입니다.

오늘 이야기의 구조가 정확히 이렇습니다. 그리고 FTX에게 비가 온 날이 2022년 11월이었습니다.

지난 편에서 원코인을 다뤘습니다. 있다고 말한 블록체인이 없었던 사건이었죠. 오늘은 정반대편에 있는 사건을 보겠습니다. 거래소는 진짜였고, 기술도 작동했고, 서비스도 좋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무너졌어요. 같은 크립토 스캔들로 묶이지만 법적으로는 전혀 다른 사건이고, 저는 이 차이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본 글은 공개 보도된 해외 사건을 회사법·금융 법리 학습 목적으로 재구성한 일반적 정보·교육 목적의 칼럼(2026년 8월 기준)이며, 특정 자산의 매매 권유나 개별 법률자문이 아닙니다. 사실관계는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내용과 언론 보도에 따른 것입니다.

PART 1. 무슨 일이 있었나 — 그리고 원코인과 무엇이 달랐나

FTX는 2019년에 설립돼 빠르게 성장한 가상자산 거래소였습니다. 한때 세계 상위권 거래소로 꼽혔고 기업가치도 수백억 달러 규모로 평가받았다고 보도됐죠. 그러다 2022년 11월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며 며칠 만에 파산 절차로 들어갔습니다.

재판에서 다뤄진 핵심은 이랬습니다. 고객이 거래소에 맡긴 자산이 계열 트레이딩 회사인 알라메다 리서치로 대규모로 옮겨져 투자와 거래에 사용됐다는 것.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는 투자자·고객에 대한 사기, 전신사기, 자금세탁 공모 등의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고 20년대 중반에 이르는 장기 징역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여기서 앞 편과의 차이를 분명히 해두겠습니다.

· 원코인 — 있다고 말한 것이 없었습니다. 블록체인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죠. 상품이 허구였습니다.

· FTX — 있다고 말한 것은 실제로 있었습니다. 거래소는 돌아갔고, 주문은 체결됐고, 고객은 실제로 거래했습니다. 문제는 상품이 아니라 그 뒤에서 돈이 어디로 갔는가였습니다.

그래서 이 둘은 같은 서랍에 넣으면 안 됩니다. 하나는 없는 것을 판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맡은 것을 쓴 이야기니까요. 그리고 우리 법에서 이 둘은 죄명부터 달라집니다.

PART 2. ★ 가장 오래된 원칙 — 맡은 돈과 빌린 돈은 다르다

여기가 오늘의 뼈대입니다. 많은 분이 헷갈리시는 지점이기도 하고요.

"은행도 내 예금으로 대출해 주잖아요. 그럼 거래소가 고객 돈을 굴리는 것도 같은 것 아닌가요?"

전혀 다릅니다. 그리고 이 차이가 금융법의 출발점입니다.

· 은행 예금 — 법적으로는 내가 은행에 돈을 빌려준 것에 가깝습니다. 은행은 그 돈을 쓸 수 있고, 대신 나에게 돌려줄 채무를 집니다. 그래서 은행에는 건전성 규제와 예금자보호 제도가 붙습니다. 쓰는 것을 허용하는 대신 안전장치를 두는 구조죠.

· 증권사 예탁금, 거래소 예치금 — 이건 빌린 게 아니라 맡은 것입니다. 보관입니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쓸 수 없습니다.

같은 '돈을 받는다'인데 법적 성격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니 써도 되는지가 갈립니다. 빌린 돈은 써도 되고, 맡은 돈은 못 씁니다. 이게 전부예요.

세탁소로 돌아가 보죠. 세탁소 주인이 손님 옷을 입고 나가는 건, 옷을 훔쳐서가 아니라 맡은 물건을 자기 것처럼 썼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런 유용에는 아주 고약한 특성이 하나 있습니다. 잘 돌아가는 동안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

FTX도 그랬습니다. 시장이 오르는 동안에는 고객이 출금을 요청하면 언제든 내줄 수 있었으니 아무 일도 없어 보였습니다. 문제는 모두가 동시에 옷을 찾으러 온 날 드러났죠. 뱅크런입니다. 그러니 정확히 말하면 뱅크런이 FTX를 무너뜨린 게 아니라, 뱅크런이 이미 비어 있던 창고를 드러냈을 뿐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명제. 유용은 사고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입니다. 잘 돌아갈 때는 보이지 않고, 안 좋아지는 순간 반드시 드러납니다.

PART 3. ★ 두 번째 실패 — 심판이 선수로 뛰었다

두 번째 문제는 이해상충입니다. 그리고 이건 구조 그 자체의 문제라 더 근본적입니다.

거래소는 시장의 심판입니다. 주문을 받아 체결하고, 증거금이 모자라면 청산하고, 가격을 게시하죠. 반면 트레이딩 회사는 선수입니다. 그 시장에서 돈을 걸고 이기려 하는 쪽이고요.

FTX와 알라메다는 사실상 같은 경영진 아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심판과 선수가 한 지붕 아래 있었던 겁니다.

왜 위험한지는 정보를 생각해 보면 바로 보입니다. 거래소는 시장의 모든 것을 봅니다. 누가 얼마에 사려는지, 어느 계좌가 어느 가격에서 청산되는지. 이 정보를 계열 트레이딩 회사가 쓸 수 있다면, 그 시장은 이미 공정한 경기가 아닙니다. 상대 패를 다 보면서 포커를 치는 셈이니까요.

그래서 전통 금융은 아주 오래전부터 두 가지 장치를 둡니다. 하나는 이해가 충돌하는 업무 사이에 정보를 흐르지 못하게 막는 차단벽이고, 다른 하나는 충돌 가능성을 미리 파악해 관리하거나 고객에게 알리고, 그래도 안 되면 아예 거래하지 않는 의무입니다. 우리 「자본시장법」도 이해상충의 관리(제44조)와 정보교류의 차단(제45조)을 명문으로 두고 있습니다.

앞서 「자본시장법 형식과 실질」 편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법은 간판이 아니라 실제 작동을 봅니다. 서류상 별개 법인이어도 같은 사람이 양쪽을 지배하고 정보가 자유롭게 오간다면, 그건 분리된 게 아닙니다.

PART 4. ★ 한국이라면 — 우리는 이미 그물이 있었고, 크립토에도 쳤습니다

이제 실무적으로 가장 쓸모 있는 대목입니다. 같은 일이 한국에서 벌어졌다면 어땠을까요.

① 전통 금융에는 이미 조문이 있었습니다

「자본시장법」 제74조는 투자자예탁금의 별도예치를 정하고 있습니다. 증권회사는 투자자가 맡긴 예탁금을 고유재산과 구분해 증권금융회사 등에 예치하거나 신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예탁금에는 상계나 압류가 제한되고, 함부로 양도하거나 담보로 제공할 수도 없습니다.

이 조문의 의미가 무엇이냐면, 회사가 망해도 고객 돈은 회사 재산에 섞이지 않고 따로 남는다는 겁니다. FTX 파산에서 고객들이 겪은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죠. 맡긴 자산이 회사 재산과 뒤엉키면서, 고객이 자기 물건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파산 절차의 채권자로 줄을 서야 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우리 법은 그 상황 자체가 생기지 않도록 앞단에서 막아둔 것이고요.

② 형사적으로는 사기보다 횡령·배임의 얼굴입니다

앞 편의 원코인은 처음부터 없는 것을 팔았으니 사기죄가 중심이었습니다. 반면 맡은 재산을 임의로 쓴 행위는 성격이 다릅니다. 우리 형법은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이를 횡령하거나,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에 위배해 손해를 가하는 행위를 횡령·배임으로 처벌하고(제355조), 업무상 그런 지위에 있는 경우 가중합니다(제356조). 이득액이 크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또 얹히고요.

즉 같은 크립토 사건이라도, 무엇을 잘못했느냐에 따라 적용될 법이 달라집니다. 없는 걸 팔았으면 사기, 맡은 걸 썼으면 횡령·배임. 이 구분이 실무에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③ 그리고 크립토에도 같은 그물을 쳤습니다

2024년 7월 시행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뼈대가 정확히 FTX가 어긴 지점들입니다.

· 가상자산사업자는 이용자의 예치금을 고유재산과 분리해 은행 등 공신력 있는 기관에 예치하거나 신탁해야 합니다.

· 관리기관인 은행은 그 예치금을 자기 재산과 구분해, 국채나 지방채 매수처럼 안전한 자산으로만 운용할 수 있습니다.

· 이용자가 맡긴 가상자산은 같은 종류, 같은 수량으로 실제로 보관해야 합니다. 장부상 숫자만이 아니라요.

· 이용자 가상자산의 상당 부분을 인터넷과 분리된 지갑에 보관하도록 하고 있습니다(시행령에서 그 비율을 정하고 있습니다).

· 예치금에 대한 상계와 압류를 금지하고, 사업자가 파산하거나 신고가 말소되면 관리기관이 이용자에게 우선 지급하도록 했습니다.

· 여기에 앞 편에서 본 시세조종·부정거래 등 불공정거래 규제가 함께 들어왔습니다.

마지막 항목을 다시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파산해도 이용자에게 먼저 준다. 이건 FTX 고객들이 겪은 바로 그 문제에 대한 정면 대응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명제. 금융규제는 대부분 사고의 화석입니다. 조문 하나하나가 과거 누군가 무너진 자리에 세워둔 비석이에요. 지난 편에서 "새 자산에는 법이 늘 늦게 도착한다"고 했는데, 이번엔 그 반대 방향도 보입니다. 사고가 법을 끌고 옵니다. 다만 그 순서가 늘 사고 먼저라는 게 문제죠.

PART 5. 그래서 실사에서 무엇을 보나

투자하거나 인수할 때, 혹은 거래 상대를 고를 때 실제로 확인할 것들입니다. 지난 스타트업 편에서 다룬 실사의 연장이라고 보셔도 좋습니다.

① 분리 — 고객 자산과 회사 자산이 장부가 아니라 계좌 수준에서 분리돼 있는가. 엑셀에서 나눠 적는 것과 다른 계좌에 들어 있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② 증명 — 그 분리를 외부에서 확인할 수 있는가. 앞 편에서 "확인할 수 없는 자산은 자산이 아니라 약속"이라고 했죠. 여기서도 같은 질문이 나옵니다. 다만 대상이 자산의 존재가 아니라 자산의 분리라는 점만 다릅니다. 외부감사, 준비금 증명, 관리기관 예치 확인 같은 것들이 여기 해당합니다.

③ 겸영 — 같은 지배 아래 심판과 선수가 함께 있는가. 있다면 정보가 어떻게 차단되는지를 문서가 아니라 실제 운영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④ 견제 — 대표의 결정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이 조직 안에 있는가. 내부통제의 본질은 두꺼운 규정집이 아니라 "안 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실제로 있느냐입니다. 독립적인 이사회, 감사, 리스크 부서가 형식만 있고 실제로는 거부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면 그건 없는 것과 같습니다.

⑤ 흔적 — 큰 자금 이동에 승인 절차와 기록이 남는가. 사후에 확인할 수 없는 이동이 가능한 구조라면, 지금 문제가 없어도 언젠가 생깁니다.

실무 체크리스트 — 고객 자산을 다루는 사업이라면 (저장해 두세요)

1. 맡은 돈과 빌린 돈을 구분하라 — 성격이 다르면 써도 되는지가 달라진다. 헷갈리면 쓰지 않는 쪽이 맞다.

2. 분리는 장부가 아니라 계좌로 하라 — 그리고 외부에서 확인 가능하게 만들어라.

3. 심판과 선수를 한 지배 아래 두지 마라 — 겸영 구조는 그 자체로 경고음이다.

4. 거부권이 있는 자리를 만들어라 — 내부통제의 본질은 규정집이 아니라 멈출 수 있는 사람이다.

5. 새 산업이라도 옛 조문을 읽어라 — 규제는 사고의 화석이다. 같은 사고가 이름만 바꿔 반복된다.

마치며 — 무너진 것은 기술이 아니라 구조였다

정리하겠습니다. FTX 사건을 "역시 코인은 위험하다"로 읽으면 얻을 게 거의 없습니다. 이 회사가 무너진 방식은 크립토와 별 상관이 없거든요. 고객이 맡긴 재산을 회사가 썼고, 심판이 선수를 겸했고, 아무도 대표를 멈추지 못했습니다. 이 세 가지는 금융의 역사에서 수없이 반복된 실패입니다. 무대만 새것이었을 뿐이에요.

그래서 저는 이 사건이 오히려 위안이 되는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위험이 아니라 이미 답을 아는 위험이었으니까요. 고객 돈은 따로 둔다, 이해가 충돌하는 기능은 나눈다, 결정에는 견제를 붙인다. 답은 이미 조문에 적혀 있었고, 우리 법은 2024년에 가상자산에도 그 답을 옮겨 적었습니다.

지난 편의 원코인이 "이 자산이 정말 존재하는가"를 묻는 사건이었다면, FTX는 "그 자산이 정말 내 것으로 남아 있는가"를 묻는 사건입니다. 존재와 귀속. 자산을 볼 때 던져야 할 질문이 둘이라는 걸, 두 사건이 나눠서 보여준 셈이죠.

세탁소 이야기로 끝내겠습니다. 좋은 세탁소는 옷을 잘 빠는 곳이 아니라, 맡긴 옷을 절대 입지 않는 곳입니다. 그리고 손님이 그걸 확인할 방법이 있는 곳이고요.

"세탁소 주인이 맡긴 옷을 입고 나가도, 저녁에 걸어두면 아무도 모릅니다. 걸리는 건 그날 비가 올 때죠. FTX의 비 오는 날이 2022년 11월이었습니다. 맡은 돈과 빌린 돈은 법적으로 다릅니다 — 빌린 돈은 써도 되고, 맡은 돈은 못 씁니다."

작성 :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 · 변리사 유연

※ 본 글은 공개 보도된 해외 사건을 회사법·금융 법리 학습 목적으로 재구성한 일반적 정보·교육 목적의 칼럼(2026년 8월 기준)이며, 특정 자산의 매매 권유나 투자 자문, 개별 법률자문이 아닙니다. 사실관계와 형량은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내용 및 언론 보도에 따른 것으로 이후 불복 절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기업가치 등 수치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어 개괄적으로만 적었습니다. 미국의 죄명과 절차는 우리 제도와 다르고, 가상자산 관련 법령은 계속 정비되고 있어 시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함께 보기 : 「블록체인이 없는 '블록체인'을 팔았다 — 원코인」 · 「비트코인은 코인이 아니라 금융 인프라다」 · 「자본시장법 형식과 실질」 · 「라임 사태」 · 「창업 첫 주에 5분 만에 정한 것이, 5년 뒤 가장 비싼 문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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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지 본 사이트의 게시물은 관련 법령과 실무를 이해하기 위한 일반적 정보·교육 목적의 자료이며,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자문이 아닙니다. 법령·판례와 그 해석은 변경될 수 있고 구체적 결론은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집니다. 진행 중인 사안의 결과를 확정적으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변호사 광고 — 게시자 :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 · 변리사 유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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